[한섬칼럼] 패션 모델의 ‘빛과 그림자’
[한섬칼럼] 패션 모델의 ‘빛과 그림자’
  • 이영희 기자 / yhlee@ktnews.com
  • 승인 2021.04.16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델기용 ‘노개런티’ 만연
패션마켓대비 모델양성 과잉
화려한 이면에 생활고 심해
패션계 ‘공생공존’ 풍토 절실
모델계, 질서·자존감 회복해야 

야외 패션쇼 촬영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다.
패션쇼장에 도착해 메이크업을 받고 대기하면서 주최 측이 준비한 김밥 한 줄로 허기를 달랜다. 촬영준비와 리허설까지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패션쇼 러닝타임이 정해져 있었다면 비대면 디지털영상 촬영이 대부분인 요즘은 장소를 옮겨가며 저녁까지 꼬박 하루가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해가 질 무렵, 도착한 저녁 도시락을 먹으며 한기를 느낀다.

특히 오늘은 구두가 맞지 않아 종일 발이 아팠다. 그래도 패션쇼에 전문 모델로 활약할 기회가 주어져 프로필에 더해진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지치고 고단한 늦은 저녁, 메이크업을 지우지 못한 채 집으로 향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중의 관심과 부러움을 사는 패션모델의 고단한 하루이다. 모델은 자신보다 디자이너 의상이 돋보이도록 절제된 모습과 매력적인 워킹에 집중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아카데미를 거쳐 전문모델 에이전시에 소속되고 패션쇼가 있을 때마다 오디션을 거쳐 발탁되면 무대에 설 수 있다. 

이런 고된 과정을 거쳐서도 이미 얼굴이 알려진 A급 모델을 제외하고 상당수가 ‘노개런티’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와 달리, 대학의 모델학과와 모델양성 아카데미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 과포화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델 과포화양성으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도 실제 디자이너 패션쇼 무대에 설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경력에 도움이 된다면 노 개런티도 불사하는 경우가 많다. 모 에이전시의 경우, 유명디자이너의 패션쇼에 자사 소속 A급 모델을 서게 하는 조건으로 신인들을 엮어 10만원, 혹은 노개런티를 제안해 뒷말이 무성했다. 10만원을 받더라도 에이전트 수수료를 제하면 7만원 남짓을 손에 쥘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회마저 극히 제한적이다. 

소수를 제외하고 ‘재능기부’가 만연하다보니 본업인 모델로는 생활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패션모델을 발판으로 CF나 연기자로서의 성장을 꿈꾸지만 생활고로 인해 꿈을 향해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아 안타깝다.

디자이너들에게도 각성이 요구된다. 디자이너들은 대한민국의 하이앤드 패션산업을 이끌어가는 주역이다. 시즌마다 패션쇼를 통해 K- 패션 트렌드를 제시하고 또한 패션쇼관련 종사자들이 다함께 공생공존 할 수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유통축소와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겪는 현황도 이해가 가지만 모델 개런티를 할 수 없는 정도라면 패션쇼를 하지 않아야 한다.

“내 패션쇼에 서는 것만으로 혜택을 주는 것”이란 말도 안 되는 논리는 사라져야 한다. 모델뿐만 아니라 백스테이에서의 ‘헬퍼’도 도시락만 제공하는 조건으로 패션학과 학생들을 동원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당한 댓가 지불에 대한 인식제고가 절실하다.

요즘은 중학생 때부터 패션모델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보니 중,고등학생부터 20대 초반까지가 본격 활동기가 된다. 사실 모델학과를 졸업하고 데뷔를 할 경우, 상당히 늦은 셈이다. 현실이 이렇고 시장은 좁은데 무더기로 양성되는 신인모델들을 보면 교육종사자들의 자성도 요구된다.

물론 대부분의 패션쇼 현장이 이렇지만은 않다. 자신의 브랜드 컨셉과 시즌별 컬렉션 의상에 부합하는 모델들을 오디션을 통해 선정하고 합당한 개런티를 제때 지불하는 디자이너들도 많다.

패션디자이너든, 모델이든 대한민국 패션산업의 종사자로서 건전한 풍토에서 건강히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구축돼야 진정한 선진국대열에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세계 패션쇼 무대에서 BTS급 모델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순간들이 앞당겨질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명 : ㈜한국섬유신문
  • 창간 : 1981-7-22 (주간)
  • 제호 : 한국섬유신문 /한국섬유신문i
  • 등록번호 : 서울 아03997
  • 등록일 : 2015-11-20
  • 발행일 : 2015-11-20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 234 (밀스튜디오빌딩 4층)
  • 대표전화 : 02-326-3600
  • 팩스 : 02-326-2270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종석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 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김선희 02-0326-3600 ktnews@ktnews.com
  • 한국섬유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한국섬유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ktnews@ktnews.com
ND소프트